5:16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5:17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 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 17절)
육체의 행실과 성령의 열매
육체의 욕망에 근거해서 결정하고 행동하면 그에 따른 열매가 맺어진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소욕(욕망)에 의해서 결정하고 행동하면 성령의 열매가 맺어진다.
목마른면 물을 마시고 싶고 배고프면 먹고싶고,
맛있는 것 먹고 싶고하는 것들은 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그것을 기초로 해서 결정,행동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엇을기준으로 결정해야 하는가? 이것이 촛점이 된다.
육신의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요한사도는 딱 세가지로 욕망을 세 범주로 이야기 했다.
창세기의 선악과 사건에서도 같은 범주의 죄의 패턴이 나온다.
이것은 또한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그 유혹의 스타일과 같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3:6)
“눈 딱 감고” 쉬운 결정을 내린 것이 인류를 어렵게 했다.
“눈 질근 감고” 이번 한 번만 사단에게 절하면 온 세상을 준다고 유혹질, 거짓말을 우리 예수님은 이겨내셨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예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고, 교회를 세우셨는데 이 세상을 준다고 하면 해 볼만한 일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세상구원이라는 명분, 교회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은 결과적으로 해석할 게 아니라, 그 과정 또한 온전해야 함을 알아야 하겠다.
교회안에서도 쉽게 쉽게 가는 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 권한을 담임목사에게 모두 위임해 버리는 경우를 본다.
사람들 모으고, 의견을 수렴하고, 충분히 논의를 거치는 것은 여간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가는 길이 좁은문, 좁은 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불건전한 교회는 그 길을 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그 대신 소 영웅주의, 일인 독재체제를 선택했다.
결과는 육체의 열매이고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2:14)
촛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5:17-26)
무엇을 따라 결정할 것인가가 중요한 촛점이 된다.
성령님도 인격이시고 욕심이 있으시다.
하고싶은 것, 하고자 하느 것 – 죄 짓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욕구는 있지만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 결정할 것인가? 아니면 성령의 소욕을 따라 결정하고 행동할 것인가는 우리의 책임으로 남는다.
그렇다고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려고 극단적인 금욕생활하는 것은 어느정도 경건에 유익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 자체만을 바라신게 아니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데는 한계가 있다.
작은 욕망은 큰 욕망에 의해 상쇄된다.
작은욕망은 큰 욕망이 오면 사라진다는 원리가 있다.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소욕보다 크게 두어야 한다. 그러면 육체의 소욕은 사라진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충만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육체가 이끄는 대로 결정하는 것의 대표가 술 취하는 것이다. 육체가 이끌리는 대로 가는 것.
성령의 소욕을 따라 결정하는 것,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성령충만으로 재정의 해 봄직하다.
예수님은 좁은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마 7:13;눅13:24)
넓은 길과 좁은 길의 차이는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의 차이이다.
“쉽게 생각하고 쉬운 쪽으로 결정하는 것은 대개 쉽게 틀릴 수 있다.”
쉬운 쪽으로 결정하는 보통사람들의 결정은 보통 틀린다고 한다.
판단의 기준이 어느 것이 내게 쉬운쪽인가를 근거로 하거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기 보다
어느 것이 내게 이익이 되는가를 먼저 생각하면 쉽게 틀릴 수 있다.
성령충만은 어떤 감정적인 경험이 아니다. 의지적인 사고 작용이 포함된다.
십자가의 희생의 원리가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큰 꿈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기본 터가 된다.
성령의 소욕을 따라 결정하라, 그 사랑을 마음을 가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