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둔한 사람은 악해서, 간계나 꾸미며, 힘없는 사람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해도, 거짓말로 그 가난한 사람들을 파멸시킵니다.
그러나 고귀한 사람은 고귀한 일을 계획하고, 그 고귀한 뜻을 펼치며 삽니다.
(이사야32:7-8@표준새번역)
이 시대에 결과론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율법주의자들이 빠지는 오류다.
결과적으로 좋으면 다 좋다고 생각한다. 어리석음이다.
진리는 퍼즐맞추기로 되지 않는다.
굳이 비유하자면 블럭을 끼워나가는 것과 같다.
우리 시대에 자칭 예언자라고 하는 자들도 우둔하기 짝이 없다.
겉으로는 않그런척 하지만 그 하는 일의 계획과 그 뜻을 살펴보면 알게 된다.
사단은 빛으로 가장한다.
거짓 예언자 역시 그렇다.
그러나 예언자는 자기를 표현한 적이 없다. 자기를 나타내려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폭발하는 빛과 같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같다.
그 입은 서슬퍼런 칼날과 같고 날카로운 화살과 같다.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딸들아, 일 년이 채 되지 못하여 몸서리 칠 일이 생길 것이다. 포도농사가 망하여 거둘 것이 없을 것이다.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아, 몸부림 쳐라.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여인들아, 몸서리 쳐라. 맨몸이 되도록 옷을 다 벗어버리고 베로 허리를 둘러라.
밭농사와 포도농사를 망쳤으니, 가슴을 쳐라.
(이사야32:10-12@표준새번역)
하나님의 눈에는 작은 죄악이나 큰 죄악이나 똑같이 보신다.
하나님의 예언자는 작은 죄악도 놓치지 않고 지적한다. 그게 원래 그렇다.
그 반대는 잘 않된다. 우린 그런 사람을 보고 까탈스럽다느니 꼬장꼬장하다느니 하면서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런데 예언자로서는 그게 오히려 솔찍하고 자연스런 반응이다. 그렇게 생겨먹었다.
작은 죄를 무시하고 경시하며 추수때 춤추는 그 여인들은 무엇인가?
“허영심” 성은 허이고 이름은 영심이다.
그들의 조상부터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고 마음은 텅비어 있다.
32:17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
32:18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집에서 살며, 안전한 거처, 평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 것이다.
이사야32:17-18@표준새번역)
화살이 과녁에 꽂히듯이 의의 열매는 평화이다. 고상한 계획과 그 뜻은 평화를 향해 나아간다.
허무한 자신의 것만으로 기뻐하고 춤추지 않는다.
자기 연민에 울지도 않고 자기 만족에 취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남의 아픔에 슬퍼하고, 나라와 공동체의 죄악으로 가슴아파한다.
이젠 알 수 있다.
계획을 하는 그 행동방식이 민주적인지 독재적인지,
왕의 아들로 종노릇하는 것인지, 종의 아들로 왕인체하는 것인지를.
행동이전에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