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Note

이중의 역설


레미제라블과에스겔 16장: 법과사랑의역설

글: Sung Chul Ham

복음은 정의 입장에서는 거짓말일 수도

1. 낙원 -> 실낙원
2. 실낙원 -> 복락원

1. 율법을 통해 모두 죄인이 되고
2. 은혜로 모두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1. 법을 통해 죽고
2. 사랑을 통해 다시 부활한다.
복음은 사랑이 담긴 거진말 일수도 있다


1. 버려진존재로부터시작된이야기

에스겔 16장의 여인은 피투성이로 들판에 버려진 아이였다. 그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생명. 하나님은 그 아이를 보시고 “너는 살아나라” 말씀하셨다. 그 한마디는 존재의 기적이자 사랑의 시작이었다.

코제트도 마찬가지였다. 가난과 냉대, 인간의 이기심 속에 내던져진 아이. 어머니 판틴은 가난 때문에 아이를 남에게 맡겼고, 그 아이는 잔혹한 세상에서 어린 시절을 잃었다.

그러나 장 발장이 나타났다. 그는 법의 눈으로 보면 도망자였고, 세상의 기준으로는 죄인이었지만, 코제트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처럼 다가온 구원자였다.

2. 법과사랑이만나는자리

레 미제라블의 핵심은 ‘법과 사랑의 충돌’이다. 자비르 경감은 정의의 사람이었고, 장 발장은 자비의 사람이었다.

자비르는 말한다. “법은 절대적이다. 죄인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그의 정의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의에는 생명을 살리는 온기가 없었다.

반면 신부의 한마디는 세상의 논리로는 거짓이었다. “그는 훔친 게 아니다. 내가 준 것이다.” 이 거짓이 법을 무너뜨렸지만, 한 인간의 영혼을 살렸다. 그 순간 법은 침묵하고, 사랑이 정의를 완성했다.

3. 은혜는불법처럼보이지만, 생명을세운다

신부의 거짓은 복음의 비유와 닮았다. 예수께서 간음한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셨을 때, 그 말씀은 당시의 율법으로 보면 ‘불법’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법을 넘어 생명을 보셨다. 진짜 죄인은 여인이 아니라, 사랑 없는 정의에 안주한 군중이었다.

오늘날 서류미비자나 불법체류자를 향한 시선도 이와 같다. 법은 냉정히 그들을 배제하지만, 그들을 숨겨주고 도와주는 이름 없는 사람들은 법보다 더 깊은 하나님의 긍휼을 따라 산다.

4. 분노한정의의사람들에게

레 미제라블은 결국 자비르에게 묻는다. “너는 옳지만, 사랑이 없다. 그 사랑 없는 옳음이 정말 정의인가?”

에스겔서도 이스라엘에게 묻는다. “너희는 버려졌을 때 나를 만났지만, 이제는 나를 잊고 스스로 아름답다 자랑하느냐?”

두 이야기는 모두 우리 안의 ‘율법적 인간’을 드러낸다. 우리는 종종 옳음에 분노하고, 타인의 허물을 통해 자신의 정당함을 세우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분노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5. 결론: 사랑이법을완성한다

장 발장은 법을 어긴 자이지만, 그의 인생은 법보다 더 완전한 정의를 보여준다. 그는 도망자였으나, 결국 사랑을 남겼다. 코제트는 고아였으나, 사랑의 열매가 되었다.

에스겔의 여인은 배신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언약을 기억하셨다.

법은 인간을 판단하지만, 사랑은 인간을 회복시킨다. 이것이 레 미제라블이 전하는 복음이며, 에스겔 16장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마무리묵상

“그가 훔친 게 아니라, 내가 준 것이다.” — 주교 미리엘의 말

“너는 피투성이로 버려졌으나, 내가 네게 이르기를 ‘살아나라’ 하였다.” — 에스겔 16:6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의 장 발장들을 부르고 계신다. 법이 버린 자들을 사랑으로 품고, 정의가 닿지 못한 곳에서 생명을 세우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복음의 진짜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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