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Note

사랑의 법

사랑의 사전적인 반대어는 미움이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사랑의 반대어는 무관심이라고 봐야 한다.

사랑에는 짝사랑과 같은 소극적인 면이 있지만, 성경적 사랑은 적극적인 면이 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사랑을 누차 강조하셨다.

성경은 사랑을 이야기 할 때 율법과 대비해서 말씀하셨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율법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무조항이라면 사랑도 그런 구속력이 있다.

권면이면서 명령이다. 가만히 있으면 그것은 죄다.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에겐 의원이 쓸데 없다. 건강하지 않는 환자에게는 의원이 필요하다.

사랑은 필요를 채우는 것이다. 의료행위는 필요를 채우는 사랑에 기초한다.

환자가 옆에서 죽어가는데 치료하지 않은 것은 “사랑하지 않은 죄”이다.

혼자서 가만히 있었는데 그게 무슨 죄냐?는 식의 논리는 비성경적이다.

율법도 그것을 말하고 있다. 원수의 가축이라도 수렁에 빠져 죽어갈 때 그것을 발견하면 건져주는 것이 율법이 말하는 바이다.

율법도 사랑을 말하고 있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개인의 구원에만 촛점을 두지 않았다.  생명의 가치에 촛점을 두었다.

우리 자신과 원수의 사이에서 애매하게 죽을 수도 있는 생명을 보호하길 원하셨다.

“직무유기”: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죄.

사랑은 마땅히 해야할 그리스도인의 윤리 덕목이다.

[마25:40]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25:45]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무엇을 해서 저지르는 죄도 있지만,

무엇을 하지 않아서 저지르는 죄도 있다.

그러데 인간은 반대로 간다.

하지 말라는 것은 기어코 하고 하라는 것은 한사코 않한다.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그 이전에 하라는 것을 않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긴 시간동안 가만히 있었다는 것도 죄인데, 하라는 것은 않하고 딴짓 한 것은 더 큰 죄이다.

인류가 저지른 최초의 죄는 선악과를 따먹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땅을 잘 다스리고 보존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일에 무관심 했다는 거. 땅에 속한 생명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 대신 하나님같이 되어보려했다. 괜히 영향력을 행사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어떤 가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해서 자신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 뒤엔 아무것도 없다.  이상도 없고 가치도 없었다.  허무한 갈증은 더 할 수 밖에 없다.

생명에 대한 사랑도 없으면서 왜 권력을 탐하냐고?

결과는 죽음이다.   누가 죽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죽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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