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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계시는 하나님(시편 10편)

지나고 나면 알게 되는 게 있지만,

지나고 나도 더러 알지 못하는 게 있다.

현재라면 더더욱 알지 못할 수 있다.

시편기자가 그랬듯이 우리도  어려울 때  “주님이 멀리 계시다”라고 믿어 버릴 때가 있다.

그건 논리적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가슴에서 만들어진 자기 합리화된 믿음일 수 있다.

멀리 계시다고 믿어버리면 우리에게 닥친 지금의 엄청난 불의가 그나마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악인이 하는 일은 언제나 잘 되고,

주의 심판은 너무 멀어서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니,

악인은 오히려 반대자를 보고

코웃음만 칩니다.  (표준새번역 시편 10:5 )

5절의 말씀은 주님은 심판의 하나님으로 언급되고 있다.

심판이 늦어지거나 발견되지 못하므로,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현재의 고난에 대한 해석을 가슴으로 한 것이다.

초반의 시편 기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공간적인 개념으로 보았다.

주님과의 거리는 정의로운 심판과의 거리와 비례한다고 믿었다.

반대로 보면 주님과 가깝게 지내는 것은 늘 심판 받으며 사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요건 몰랐을 거다.)

주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은 다른 말로 주의 심판을 지켜보며 사는 삶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심판을 받거나 다른 사람이 심판받는 것을 보거나 둘중에 하나여야 한다.

또, 과거에 어떻게 심판하셨는지,

미래에도 어떻게 심판하실런지 그 모든 것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현재이다.

현재는 너무 찰라적이여서 한가롭게 볼 여유가 없다.

악인이 하는 일이 현재진행형이기에 그 아픔과 고난도 더욱 뼈와 살과 가깝다.

온 신경이 곤두서 있다. 스쳐 우는 바람에도 예민하다.

그래서 미래의 것을 현재에 가불해서 쓰고 있다.

미래의 될 일을 현재형으로 기술하고 있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서 가까운 미래는 현재로 쳐주기 때문이다.

현재에 발견되지 못한 악에 대한 심판은 곧 일어난 유보된 심판이다.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경멸하고, 마음 속으로 하나님은 벌을 주지 않는다 하고 말하게 내버려 두십니까 ? (시10:13)

13절에는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하나 들어가 있다.

“‘하나님은 벌을 주지 않는다’

하고 말하게 내버려 두십니까?”
질문에 답이 있다.

잘 만들어진 질문에 잘 답할 수 있다.

질문을 뒤집으면 답이 보인다.

뒤집어진 질문에 질문한 사람의 의도가 보이면 답이 여기있다 하며 나타난다.

악인이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는 분이라 하며 하나님을 경멸하고 비웃고 조롱할 때

그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최대의 벌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물은 고인 상태로 그대로 내버려 두면 썩는다.

내버려둔 그 상태가 바로 최대의 벌인 이유는 다시 회개해야할 기회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개하고 돌아오면 얼마든지, 무슨 죄라도 용서하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신데,

그 처음, 첫단추, 첫단서가 되는 회개를 하지 못하도록 그냥 내어버려두시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진짜 벌이라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 두면 결국 지옥에 간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할 수 있도록 죄악이 뽀록나는게 하나님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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