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구절

여자대 여자(혈류증 앓았던 여인 VS 회당장의 딸)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막 5:34-35)

여자라고 해서 다 같은 여자가 아니다.

여자안에서도 차별이 존재해왔다.

남자 안의 차별은 그림자처럼 여자에게도 고스란히 반영되어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 신분 계층의 반영은 그 당시의 사람으로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였다. 그래서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복음은 날카롭게 두 여인이 겪은 그 차별을 구분해 내고 있다.

그런데 진도 더 나가다 보면, 이와는 다르게 두 여인을 포함한 더 큰 차별이 있음을 복음은 알려주고 있다.

두 여자의 차별을 통해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것은 보다 위에 있는 구조적인 차별이다. 그것은 인간 간의 차별인 동시에 인간 안에 있는 차별이다. 그래서 복음은 본질적이다. 복음은 실존을 통해 본질을 다룬다.

요약하면 “어느 누구나 예수 없는 인간이라면, 죄악으로 고통당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동시대의 인간은 인간끼리 차별하지만, 복음은 시간의 차별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를 만난 이전과 예수를 만난 이후의 차별이다.

우리의 적은 같이 살고 있는 타자가 아니라 과거의 우리 자신이다.

현재를 두고 과거와 미래가 대립,대조되어 있다.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던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했다.

우리 자신을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믿는다면, 과거와 결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의 자신과 화해라라”는 말은 이미 적대관계였음을 포함 하고 있다.

후회는 과거에 머물러 있고, 회개는 미래를 지향한다.

후회가 아니라 회개와 용서로 우리는 죽고, 다시 태어나 화해할 수 있다.

어둠과 빛, 어두운 새벽과 밝은 아침, 인간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 십자가와 부활,…

후회만한다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회개하고 개과천선해서 부활로 나아가는 것이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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