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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의 삶

성경안에 두가지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가나안 농경 문화와 다른 하나는 히브리 문화가 그것이ㅏㄷ.

가나안 문화는 기본적으로 농경문화이다.  농사를 지으려면 한 곳에 정착해야 한다. 농경문화는 정착문화이다.  소출을 쌓아둔다. 저축이 투자로 이어지기도 한다. 유목민에 비해 외부세계와 교류가 비교적 적다.  그래서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문화는 전통으로 굳어질 수 있다.  세대를 거쳐갈수록 전통이외의 것에 대해 배척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히브리인들의 유목문화도 동시에 존재했다. 여기저기 가축들을 데리고 떠돌아 다니며 살았다.  목초지를 찾아서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생활을 한다.  그래서 살고 있는 집도 화려하게꾸밀 필요가 없다. 곧 떠나갈 것이기 때문에 미련이 없다.

그들은 외부의 세계와 늘 열려있고, 정보를 주고 받을 준비를 해야 했다. 신변에 대한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음으로 정보를 긴밀하게 입수하여 피신하거나 그에 대처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서로 서로 나그네를 환대했을지도 모른다.  주변의 소식과 돌아가는 정세를 귀동냥으로 얻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끼리의 일종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갔을 것이다.

가인과아벨

같은 장소인지 다른 장소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두 형제는 동시대 사람으로 제사를 각각 다른 방식으로 드렸다.

왜 가인과 아벨은 같은 제사를 드리지 않고 다른 제사를 드려야 했을까? 그 두 제사를 하나님은 비교하셨을까? 하나는 받으시고 하나는 받지 않으셨다고 하시면서 차이를 드러내셨을까? 굳이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여기서도 하나님이 하시고자하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였다.  차이를 통해서 알 수 있도록 비교해 주신 것 같다.

사람이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가?,  아니면 문화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 문화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런데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한다. 자유를 가지고 선택한 것은 책임이 따른다. 그래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하고 그 책임은 나와는 상관이 없다”라는 논리를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문화적 환경안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지 않아도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될 경우 책임은 누가 지게 되는가?

선택의 자유는 잘못사용되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려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다른 면으로 보자면  문화를 만들어가는 문화 생산자로서의 인간도 고려해 볼 만하다.  두 문화중에 어느 문화를 선택할 것인가? 어느 길을 따를 것인가? 어떤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인가?로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볼 필요가 있다.

가인은 농사를 지은 모양이다. 그는 정착민이였다. 아벨은 목축업을 했다. 유목 생활을 하였을지도 모른다.

아브라함과 롯은 둘다 유목민이였다. 각자 독자적으로,  가축을 키우는 목동들을 거느렸다.

문제는 그들의 비즈니스가 잘되자 필요한 목초지가 부족해졌다.

“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선택하는 주체로, 선택을 만드는 의사결정 주체로 아브라함은 그렇게 롯을 대했다.

아브라함은 친척이라도 갈라서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애초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였다.

롯은 소돔과고모라의 정착된 도시근처 목초지를 선택했고

아브라함은 불모지를 선택당했다. 어려운 나그네 생활을 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환대,대접하는 중에 하나님의 사람들 대접했다. 그 인연으로 사라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유목민의 문화

기본적으로 유목민은 나그네의식을 지니고 살았다. 언젠간떠나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그들은 현재에 집착하지 않는다. 직업 자체가 땅을 소유할 수 없는 문화이다. 늘 고향을 그리워 하고 소망하는 문화이다.  나그네가 나그네를 만나면 환대,대접하는 문화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나그네인가 정착민인가?

성경의 예를 찾아 보면, 창세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야곱의 경우, 그들도 떠도는 나그네 신세였다. 아브라함은 아내의 묘지도 없었다.(창23:4), 야곱은 타의 반 자의 반, 그야말로 이리저리 쫓겨사는 신세였다.(창47:9)

출애굽기에 보면 나그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 (출22:21;출23:12)

레위기는 어떤가? 아예 그것을 율법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대전제는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 의미는 땅을 인간이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 대전제를 그리스도인들이 잘 지켰더라면 무슬림들이 유럽에서 그렇게까지 번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전제 때문에 하나님은 땅을 사고팔지 말라고 하셨다. 사적 재산이 될 수 없는 것이 땅, 토지이다는 것이 하나님의 대전제이다.  나그네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농경민들은 쉽게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레25:23) 경제시스템안에서 토지는 다른 재화와 확연히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이다.

신명기는 어떤가?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신10:18,19)

예수님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도 나그네 의식을 엿볼 수 있다.(눅 12:13-21)영혼의 길을 나그네로서의 삶을 말씀하고 계신다.

사도바울(딛1:8;히11:13)도 그랬듯이 베드로 전서에 보면 베드로또한 초대 그리스도인들을 나그네로 불렀다.벧전(1:1, 17; 2:11)

디아스포라가 된 나그네, 흩어져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이였다. 네로 황제의 핍박과 고난을 이기는 길은 나그네의식을 가지고 천국에 소망을 두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안주하려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과 독립된 삶을 살 가능성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의 길을 가는 나그네

그리스도인들은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은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친구이고 친척

천국과 지옥에 대한 정보를 서로 나누고 공유하며 대처하며 사는 사람

그러므로 교제는 당근이다, 서로 서로 가르치고 안내해준다. 길을 가는 FellowShip 생김.

어떻게사는 것이 정의로운 삶이고 천국을 준비하는 삶인지 자연적으로 알아가게 되는 사람들.

의식속에 그들의 생각은 늘 하늘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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