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갈수 없는 곳 두 곳이 있다.
막다른 골목길과 낭떠러지이다.
길은 없지만 계속 가야하는 게 인생이다.
막다른 골목길이면 두 가지 선택이 있다.
거기서 멈추어 자신을 썩히거나
전진하지 못하고 뒤돌아 퇴행하는 것이다.
그러기 전에 막혀있는 지 뚫려있는 지 먼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여 잘 살펴볼 일이다.
어떤 길은 낭떠러지 같은 곳이 있다.
무한한 바다로 열린 길이다.
길은 없지만 배가 있다면 항해할 수 있다.
자신이 길을 만들어 가는 거.
“인간의 욕망은 무한대”라는 가정은 진리처럼 여겨지고 있다.
욕망을 떨쳐버리는 것에 온 힘을 쏟다가 에너지가 고갈되어 간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없애버리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려고 한다.
목회자와 교계지도자들의 끝을 여러번 확인해 보지만 그 길은 막힌 골목길인 게 틀림 없다.
그래서 그 길은 가지 않기로 했다.
식욕, 성욕, 물질욕, 권력욕 …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없앨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을 없애려고 하다 그것에 함몰되어 버리는 모습을 본다.
버릴려고 하지만 오히려 더 가까와 져서 중독되는 도착증세가 보인다.
길을 잃고 헤메는 정도가 아니라 막힌 골목에서 절규하고 있는 듯 하다.
기왕 절규할 바엔 낭떨어지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 버리면 하늘과 바다가 우리의 길이 될 것이다.
날개가 있다. 이미 주어져 있다. 다만 용기가 없어 날지 못할 뿐이다.
기왕 길을 잃고 헤멜바엔 무한대로 열어버리는 곳에 가는 거다.
식욕, 성욕, 물질욕, 명예욕 그 자체는 죄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거부해도 또 생겨나게 되어 있다.
그보다 더 큰 욕망, 더 높은 욕구, 더 깊은 욕망, 더 멀리가는 욕망을 가지면 육체의 욕망은 사라져 버리게 되어 있다.
더 이상 초딩처럼 생각하지 말기다. 교회야 유치하게 왜 그러니? 사단이 하는 짓에 제발 낚이지 말자!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 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17절
어떤 교계 리더들의 성적인 문제를 겉으로 드러난 남녀 문제로 파악하지 말기다.
남과 여를 포함한 인류차원으로 끌여들여 그 원인을 생각하기다.
식욕은 잠자는 욕구에 굴복한다. 졸린 데 먹고 싶지 않다.
잠자는 욕구보다 더 큰 욕구가 있다면 그것을 추구하라.
그리고 궁극적으로 육체의 욕구보다 더 큰 것을 추구하면 잔 가지같은 욕구들은 사라진다.
문제의 원인은 우리에게 그런 높은 욕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욕구(?),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 예수가 죽기까지 가신 그 길,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는 그 욕구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육체의 욕구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거, 그게 진짜 원인이다.
성적인 타락, 물질적인 탐욕, 명예욕은 그 결과로 나타난 증상, 현상에 불과하다.
교회안에서 추구하는 것들이 성령의 욕구 대신에 육체적인 것들, 육신적인 것들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현상적으로 나타난 것들이다.
다른 사람의 육체적 타락에 손가락질 하기보다,
같이 하나되어 원인이 뭔지 생각해 볼 때이다.
성적인 문제로 남녀를 갈라놓고 이간질,
교리적 문제로 교파간의 갈등을 불질러 놓고 이간질,
인종적인 문제로 인종간에 갈등을 부추겨놓고 이간질,
경쟁을 시켜놓고 학교에서 이간질,
국적을 놓고 사건 마다 차이를 두고 차별하는 이간질,
정말 차별해야 할 것은 단 하나,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단 한 가지만, 바알에게 굴복하는 우상 숭배, 빼고 무차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