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구절, SermonScript

진리안에 있는 사랑

1:7 속이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야말로 속이는 자요, 적그리스도입니다.

1:8 여러분은 스스로 삼가서, c) 우리가 수고하여 맺은 열매를 잃지 말고, 충분히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십시오. (c.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여러분이)

1:9 누구든지 앞질러 나가서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둘 다 모시고 있는 사람입니다.(요한이서 1:6-9)

사랑과 진리,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질문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답도 잘 못될 수 밖에 없다.

질문에서 말하는 전제는 사랑과 진리가 서로 충돌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천만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의 동기는 진리이다.

깨달은 진리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 깨달은 진리대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진리와 사랑은 함께 다닌다.

어머니가 태아를 뱃속에 품듯이 진리가 사랑을 품고 있다.

어머니는 사랑을 낳는다. 진리가 사랑을 낳지 사랑이 진리를 낳지 못한다.

사랑이 진리가 되어가고, 진리안에서 사랑이 성숙해 간다.

하나님이 낳은 자녀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진리안에서 우리를 낳으셨다.

사랑이면 받드시 진리이다.

그리고 기억하자. 진리 안에 사랑이 있다.

사랑이면 모두 반드시 항상 진리이다. 단 유일한 조건은 진리안에서이다.

참 진리가 참 사랑을 낳고, 거짓진리는 거짓 사랑을 낳는다.

영지주의자들이 주님의 자녀들을 괴롭혀 왔다.

육체로 오신 예수를 부인했다.  이들은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을 주장했다. 도덕적 무용론에 빠져버렸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출발점이 진리가 아니였다.

참 진리가 아닌 거짓된 진리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와 다른 종자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열매를 거두어 들였다.

오히려 그것을 원했을 지도 모른다.

사랑이긴 하지만 진리가 없기 때문에 작동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참사랑이 아니고 우리가 만든 (그래서 더더욱 화려하게 보이려한다)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변화시키기는커녕 더 타락시켜버렸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란 전제는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열매가 우리 교회안에 도덕적 타락을 가져와 버렸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진리 밖의 사생아를 낳았다.

이원론을 가지고 사랑과 진리의 이중잣대를 구사해왔다.

본인들도 사생아인줄 안다. 그것을 가리기 위해, 스스로 속였다.

어리석게도 한 번 두 번 자신이 한 그 거짓말이 같은 사람들끼리 통하게 되자 그게 진짜처럼 믿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론을 만들고 거기에 살을 붙여나갔다.  보편성을 상실한 극단적 논리로 무장해 버렸다.

비둘기 같이 순전한 일반 성도들에게 그들은 진리를 외치는 사람을 향해 사랑이 없다는 이유로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또 기억하자: “진리없는 사랑이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진리없는 사랑은 사생아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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