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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으로 도망간 레위인들

 이 모든 일은, 내가 예루살렘을 비웠을 때에 일어났다. 나는 바빌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년에 왕을 뵈러 갔다가, 얼마가 지나서 왕에게 말미를 얻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서, 엘리아십이 하나님의 성전 뜰 안에 도비야가 살 방을 차려 준 이 악한 일을 알게 되었다. (느헤미야13:6@표준새번역)

이 본문을 읽으며 생각난 장면이 여럿있었다.

첫번째로 생각난 장면은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이였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성전마당을 다 뒤집어 엎은 사건이였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의 날을 이야기 하시면서 몇가지 비유를 드셨는데

그 중에 달란트 비유를 하셨다.

“착하고 충성된 종” 과 “악하고 게으른 종”이 대비를 시키시며 준비하고 예비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다.

무엇이 충성된 일이였을까?  각각의 달란트를 가지고 해야할 일이 과연 무엇이였을까?

누가복음 12:42에서는 많이 맡은 자에게 많은 것을 구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맥락에서 마태복음의 달란트비유에서 “무릇 있는자는 더 있게 되고 없은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말씀을 다시 해석해야 할 것 같았다.

두번째 장면은 부자청년과 대화를 나눈 장면이다.

부자청년이 “선하신 선생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예수님에게 물었었다.

율법을 지키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부자청년은 다 지켰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가지고 있는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예수를 따르지 못했다. 왜냐하면 재물이 많아서 였기 때문이였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선한일을 하고 싶어 했던 것일까? 아니면 영생을 얻고 싶어서 였을까?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고 싶었고, 동시에 하늘나라의 영생을 얻고 싶어했었다.

재물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재물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영생과 영벌이 갈리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십일조를 많이 걷히는 게 관심이 아니라 십일조를 어떻게 잘 쓰느냐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거.   그 걸 모르고 있었나 보다.

세번째 장면은 마지막 싶판의 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열처녀의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와 함께 마지막 때에 주님이 다시 올 때 충성된 자를 찾아 상주시는 것을 말씀하셨다.

“누가 신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 주인이 그에게 자기 집 하인들을 맡기고, 제 때에 양식을 내주라고 시켰으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 (마태복음24:45@표준새번역)

달란트 비유와 마찬가지로 주인이 종들에게 무엇인가 맡기고 멀리 떠나고 난 다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기본 “패턴”이다.

맡기고 멀리 떠났다가 부지불식중에 다시 돌아옴

느혜미야도 잠시 일을 맡기고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를 만나러 떠난 후 그 왕에게 부탁하여 말미를 얻어 다시 돌아온 장면은 어쩌면 우리 주님이 다시 돌아오는 장면과 같은 형편이 될지도 모른다.

정리해 보니 이렇게 나왔다.

내편: 충성, 선한 청지기, 착함, 선한 일, 언제 오시든지 상관하지 않고 제 때에 쓸 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줌, 정직,분배

상대편: 게으름, 악함,  악한 일, 더디 올 줄 알고 흥청망청 자기가 원하는데로 사용, 위선,독점

주님이 언제 오시는지가 중요한 이유는 주인의 심판을 모면해 보겠다는 심사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주님이 언제 오시는지가 중요하지 않은 이유는 그 사람의 충성됨, 착한 일, 정직한 태도가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질문할 것 질문해야지!!!    의도에서 딱 걸린 것이다.

 

 

느혜미야가 성전의 물건들을 제 자리에 갖다놓게 하고 그 방의 쓰임새에 맞게 다시 정리해 놓았던 것과 함께

제 때에 식물을 나눠주지 않아서 밭으로 도망간 레위인들을 다시 불러들인 것은 우리 시대에도 공감이 되는 사건이였다.

사명을 맡았던 자들이 식물(경제적이유)때문에 밭으로 가서 일을 해야 했단다.

우리 시대에도 사명을 맡았던 사역자들이 경제적 이유 때문에 풀타임에서 파트타임으로 파트타임에서 전업으로 직업을 가지는 일은 흔히 발견되는 일이다.

아니 처음부터 풀타임은 꿈도 꾸지 못한다. 간보기부터 먼저 들어간다. 세상사람들처럼…

복원,정리정돈, 원래 있던 자리, 이것이 느혜미야가 했던 개혁이였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원래 그 자리고 가는 것이 개혁이고 회개이고 선한 일이다.

원래 그 자리 그 쓰임새를 찾고 실행하는 것이 영생.

원래 그 자리 그 쓰임새대로 하지 않게 하는 것은 불순종이고 영벌에 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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